버스와 도로 사이 벌어진 50cm의 틈, 그리고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벌어진 27cm의 틈. 이 작은 공간은 비장애인들의 바쁜 걸음에 잠깐의 숨을 쉬게 하지만, 장애인에겐 마치 숨을 참고 건너야 하는 절벽과도 같다. 얼마 전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이 간격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의 승강장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도로와 인도를 이어주는 경사판이 없어 먼 길을 돌아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마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처지에 문득 서울의 곳곳을 떠올려본다.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시 말해 장애인 스스로 우리나라의 여러 시설을 이용하려면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틈에 빠지지 않고 건널 방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벌어진 간격을 메꿔주는 이동식 판을 가진 안내원들을 기다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장애인 인권 헌장> 제4장에는 “국가는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행동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장애인은 그것을 요구하고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장애인들은 보장되지 않은 권리에 지하철이나 도로 위에서 이동을 보장해달라며 외쳤다. 

  따라서 비장애인은 장애인들의 외침을 자신의 출퇴근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이동’이라는 보편적 자유는 누군가의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무작정 비판하는 사람들과 비판해야 할 주체를 잘못 짚은 판단은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만 부를 뿐이다. 더불어 이 문제의 실마리는 여기에 있지 않다. 우리는 미처 보지 못했던 ‘틈’을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비판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세상은 거대한 권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 때문에 모두가 사회적 약자인 이곳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갈등은 허공의 외침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 목소리로 정부의 제도적 마련에 문을 두드려야 한다. 모두가 누리는 자유가 당연함이 될 때 비로소 그 틈을 메꿀 수 있을 것이다. 

장수빈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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