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하일지 전 교수가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피해자 학우의 고발이 있던 2018년 3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의 재판 결과다. 그간 학교는 하 전 교수를 징계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과에도 징계를 계속해서 유보했다. 그리고 지난 8월 31일, 하 전 교수는 파면 없이 인문대학 문예창작과 정교수 자리에서 정년으로 퇴임했다. 1심 결과가 나온 직후, 본지는 피해자 학우와 만나 이야길 나눴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문예창작과 13학번 A 학생입니다.

1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부족한 형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강제추행 사건 때문에 20대의 반을 날렸어요. 이마저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집행유예는 여전히 부족한 처벌이에요. 그래서 처벌 선례가 많이 만들어지길, 이를 통해 성범죄가 근절되는 사회가 오길 갈망하고 있습니다.


남은 재판 일정이 있다면요
민사재판이 남아있어요. 다음 달에 하 전 교수, 박진성 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박 시인의 경우, 재작년 5월에 제 실명을 SNS에 공개하고선 하 전 교수에게 사과하라는 글을 게시한 적이 있거든요. 이번 원고엔 어머니 성함을 함께 기재했습니다. 제가 사건 이후 밖으로 뛰어내리는 행동을 한 적이 있어서, 어머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남아있으세요.

하 전 교수는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전시회를 열며 활동을 이어나갔는데요. 이를 아셨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하 전 교수의 가해 사건을 주변에서 알 텐데 장소 대여, 전시 큐레이팅 그리고 보도까지 원활하게 진행됐어요. 그들이 둥글게 뭉쳐서 잘살고 있구나 싶으면서, 그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기억도 있어요. 당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이 전시회 추천사를 쓰자, 경희대학교 페미니즘 소모임 ‘등불’에서 사과를 받아냈을 땐데요. 그 공동체서 부끄러움을 알고 나선 분이 있다는 게 감사했습니다. 한편 어린 학생들이 지적해줘야만 잘못임을 알까 하는 답답함, 체념도 크게 들었죠.

2018년, 하 전 교수의 파면을 요구했으나 결국 정년으로 퇴직했죠. 학교의 미온한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결국, 학교가 해준 게 하나도 없어요. 여기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죠. 재작년 학교에서 열린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하품하고, 팔짱 낀 채 졸던 진상조사위원 분들이 생각나네요. 그래서 정년퇴직 사실을 알고도 그럼 그렇지 싶었죠. 항상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정년퇴직도 잘 시켜준 거예요. 
학교는 제 고발로 대학 이미지가 실추됐다 여긴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와 학교가 배치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죠. 사건에 잘 대처했다면 학교 이미지가 더 좋아졌을 텐데, 소극적으로 대응했고요. 갑갑합니다. 그래서 파면 요구 이후로 학교에 무언갈 바란 적은 없어요. 이제 투지를 많이 잃은 것 같아요. 지치더라고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학내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학교에 성인권위원회가 생겼다고 들었어요. 성인권위원회가 그 기능을 잘 해냈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여자대학교 그리고 여대생을 향한 성적 대상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투 이후 가장 힘든 점은요
  2차 가해도 버거웠지만, 가족 안에서 버티기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가족은 다음부턴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제가 그럴 거리를 만들어줬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고발을 통해 학과 내 거짓 소문을 바로잡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가해자는_감옥으로 #피해자는_일상으로’라는 문구가 있죠. 1심 이후,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나요
  지금은 조금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전엔 학교에 가면 몸이 떨리고, 과호흡이 와서 수업을 듣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심한 성폭력을 당한 게 아닌데, 몇 년 동안 힘들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고요. 일상으로 다시 가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일상이겠지만 글을 쓰면서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건 이후로 시는 썼는데 소설은 한 번도 안 썼거든요. 소설도 이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학우분들 응원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하 전 교수의 기자회견장에서 대신 화내주셨을 때, 포스트잇 부착, 인권장례식 계속 지켜봤어요. 거기서 모든 힘을 다 얻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는데 학우분들이 열렬히 채워주셨어요. 연대해주시고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성폭력 피해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처벌 선례를 위해 혹은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좋지만, 자기 자신만 생각해도 고통을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요즘은 함께 분노해주시고 연대해주시잖아요. 폭로 이후 분명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이것들을 극복해나가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서 상처를 조금이라도 꺼내길 바랍니다. 
                                          하주언 기자 gkwndjswn2@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