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당선작

시 부문 당선작

矉目

이상아(국사 10)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공연히 그녀의 눈썹을 생각해본다.
그날 밤 우리는 왜 그리도 눈물을 흘렸을까.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부뚜막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우리는 축축한 누룽지 한 조각을 나누어 먹었다.
남은 부스러기 위로
고양이와 쥐 한 마리가 붙어 앉아 고개를 처박던 그 날
우리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도 내뱉었을까.
첫사랑이 남기고 간 단풍잎은 아직 발갛게 익어가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또 어떤 얼굴을.
그녀는 아궁이를 바라보았고,
나는 촛대 위에 한발을 떼고 서있는 새를 바라보았다.
새의 날개는 오른쪽만 젖어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고,
그녀는 왼쪽, 나는 오른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렸다.
거리의 단풍잎이 산산이 부스러질 때쯤,
나의 서시는 눈썹을 찌푸린 채 떠나가고
나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그녀의 얼굴을 따라했다.
촛대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새 한 마리는
눈썹을 찌푸린 채 하늘로 날아올랐을까,
이렇게 비가 내리고,
오래된 책 먼지 속에서 부서진 단풍잎 하나가 고개를 드는 날이면
나는 공연히
떠난 그녀의 눈썹을 생각해본다.


시 당선 소감
 누구나 이 계절이 되면 지난 것에 대한 쓸쓸함과 아쉬움을 견딘다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유달리 혼자인 듯 외로워지곤 했다. 늦은 밤, 혼자서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있다가도 문득. 버스 차창 너머 불어오는 답답한 바람에 눈을 감다가도 문득. 그것은 지나간 옛사랑에 대한 후회도, 미처 돌아보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서러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그리움이었다. 문득 무엇인가 그리워질 때면 나는 어느새 가을이 가까이 와있음을 깨닫곤 했다. 그런 가을이면 나는 남몰래 연습장을 조금씩 찢어내어 시를 쓰곤 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할 어수룩하고 미숙한 것이었다. 정착 없이 표류하는 그리움들을 담은 그 짧은 것들이 가을을 지날 때마다 조금씩 늘어갔다. 여전히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스스로에게 퍽 위안이 돼주는 것이었다.


 그런 내게 이처럼 소중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것을 이 가을에 더 열심히, 그리고 더 분분히 그리워하라 어깨를 토닥이는 위로라 생각하려 한다. 내 곁에서 묵묵히 함께 이 계절을 걸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기회를 통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단풍이 발갛게 빛을 발한다. 오늘만큼은 이 가을을 아름다운 날이라 미소 짓고 싶다.


시 심사평
 작년에 비해 응모작 수가 많았다. 모든 응모작이 시로서의 품질과 가치를 균등하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운영하는 문학상의 경우 학생들의 참여가 반가운 건 사실이다. 아직은 자신만의 분명한 언어를 발견하지 못한 응모작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자기의 세계를 보여준 작품을 읽는 일은 즐거웠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아있던 작품은 「노을」 외 2편, 「밀어」 외 2편,  「矉目」 외 3편이었다.


 「노을」은 유년의 아픈 상처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 현재의 주체가 자신의 상황을 파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꽃잎이 흩어지듯 시의 언어와 시적 주체의 감정도 흩어져 있었으나, 오히려 시의 주제와 형식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재미있었다. 그러나 함께 투고한 작품이 아직은 숙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 거칠어 보였다.


 「밀어」는 우리 안에 내재된 욕망을 ‘밀어’라는 말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뱉을 수 없어 숨겨놓은 말들, 그것들이 모두 ‘밀어’일 것이다. 이 말에는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우리의 욕망이 녹아 있다. 그 말들의 운명을 통해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감정은 “입을 벌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가 보였다”에서처럼 숨길 수 없다. 재채기를 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그 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까마득해져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시적 주체가 “오늘밤 나를 우주에 데려다줄래”라고 말할 때, 훨씬 더 크게 읽는 이의 마음이 흔들렸음을 말해두고 싶다.


 「矉目」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난 사람의 아프고 슬픈 마음을 무리 없이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감정의 절제도 언어의 절제도 돋보였다. ‘부뚜막’과 ‘단풍잎’, 그리고 ‘촛대 위의 새’ 역시 시적 주체가 겪었을 상처를 깊게 하면서 너무 쉽게 드러나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언어를 다루는 능력에 믿음이 갔다. 다른 응모작품들이 모두 기억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망설여졌지만 기억의 순간들을 언어화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矉目」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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